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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작가 조경래.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2.16=k문화타임즈]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발행인(시인 소설가) 김경홍] 며칠 전 지인이 주말에 금오산 정상을 다녀오자는 제안을 해 왔다. 그러면서 익히 알려진 대혜폭포 방면이 아닌 자연환경연수원 방면을 출발지점으로 하자고 했고, 그러자고 했다.
정상은 대혜폭포로 가든 자연환경연수원으로 가든지 간에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삶의 종점도 그렇다.
연말을 향해 걷는 걸음들이 분주하다. 하지만 자주 돌아보는 걸음새들이 많아 보인다. 분주히 움직여야 할 길이지만 속도를 줄이면서 잠시 생각 속에 머물고 싶은 간절함이 아닐까 싶다.
연말에 만나는 인연들 중 특히 장년기나 노년기의 지인들이 꺼내는 말투는 열이면 아홉 “올해도 다 간다. 내년이면 00살이네. 한 일도 없이...”
그러면서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어한다.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 인간은 어쩌면 소중한 선물일는지 모르나 어쩌면 불행한 선물일 수도 있는 ’생각하는 동물‘로 태어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생각을 올바로 잡지 못하면 망상이 되고, 망상은 그야말로 자신을 초라하게 하거나 절망케 할 뿐이다. 하루가 백년이고 백년이 하루다. 우리는 오로지 하루를 살고 있을 뿐 백년 천년을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연말에는 잠시 시간을 내 단 한두시간만이라도 명상을 하자. 남에게 해로움만 끼치지 않는다면 삶의 방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진리를 추구한다면 나이가, 세월이 무슨 문제인가.
사회운동가이면서 탐험가인 쿠스토는 “우리가 논리적일 때 미래는 암담해 보인다”고 했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논리의 철망을 탈출할 때 꿈과 희망의 문이 열린다는 의미다.
각종 학파를 만들었거나 만들어 놓은 학파를 파괴한 수많은 철학자들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최종의 언어는 “고정관념을 파괴하지 않으면 늘 불행한다”는 인식론이었다.
칸트가 말하는 순수이성, 절대이성, 예술론비판이 그렇고, 니이체가 말하는 니힐리즘(허무주의)이 그렇다. 다소 이념을 달리하긴 하지만 헤겔의 변증법과 맑스 엥겔스의 공산주의론도 진리에 접근하려면 고정관념을 어떻게 파괴하고 또 그 위에 어떤 관념을 심느냐는 데 있었다.
“하루가 백년이고 백년이 하루일 뿐이다”
'재털이가 꽃병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연말이 되자. 자신이, 혹은 남이 만들어 놓은 논리에 빠져들어 절망하거나 암울해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삶에게 미래는 없다. 오로지 오늘, 오늘 중에서도 현재,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적거나 간에 공히 만나는 종착역은 하나의 생명, 진리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백년을 매일 살고 있고, 하루를 백년처럼 살고 있다. 논리에 빠져 연말이나 연초, 자신의 삶을 암울하게 한다면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형벌하는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다. 논리적인 것과 고정관념같은 인식을 극복하거나 파괴해야만 꿈과 희망이 넘치는 오늘같은 연말, 연말같은 오늘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