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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시 고아읍 강정숲
[사진 작가 조경래]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발행인(시인 소설가) 김경홍] 퇴직한 60대 초반의 A 씨는 하루하루가 암담하단다. 축·조의금과 아파트관리비, 차량운영비, 통신비, 생활비와 용돈, 그리고 손자·손녀에게도 관심을 써야 한단다. 그래서 그는 늘 불안하다.
식당업을 하는 B 씨 역시 하루하루가 고단하단다. 임대료와 세금, 전기료와 수도세, 난방비, 고정비용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제자리걸음이라는 게 원인이다.
70을 바라보는 C 씨는 늘 세월 앞에서 주저앉는다. 70을 넘어서면 소일거리조차 없을 것이고, 75세를 넘어서면 거동이 불편해질 것이며, 80을 넘어서면 자식들이 ‘현대판 고려장인 요양병원’에 보낼까 봐 지레 겁을 먹는다.
입사시험에 두서너 번 떨어진 청년 D 씨는 세상과 마주하기가 싫단다. 결국, 방문을 걸어 잠근다. 은둔형 외톨이로 주저앉은 그는 “서너 번 떨어졌으니, 가망이 없다. 늦어도 30대 중반이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려면 좋은 직장이 있어야 하고, 모아놓은 돈도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만들어낸 논리 속으로 빠져들면서 세상과 벽을 쌓는다.
탐험가이자 사회운동가인 프랑스 출신의 쟈크 쿠스토(Jacques Cousteau)는 “우리가 논리적일 때 미래는 사실 암담해 보인다”라고 했다.
논리는 삶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힘이 되지만, 때로는 늪 속으로 주저앉히는 절망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논리의 함정’ 속에서 절망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70일을 넘어서면 소일거리조차 없어지고, 80을 넘어서면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식당업을 하는 이도, 퇴직자도, 입사시험에서 낙방한 청년 역시 늘 그대로일 것이라는 법칙은 없다.
필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신념이며, 희망이다.
주변을 살펴보거나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논리를 뛰어넘는 희망과 신념의 힘으로 일어선 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소수로 다수를 이길 수 없다’는 논리를 뒤엎은 전쟁터의 장수들은 상투적인 병법을 내팽개친 희망과 신념의 소유자들이었다.
60대 초반에 퇴직한 많은 이들 중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논리의 늪’ 속에서 희망의 신념을 끈을 잡고 빠져나와 상투적인 생활경제학의 논리를 걷어찼기 때문이다.
암에 걸렸지만, 건강을 회복한 이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의료학의 논리를 뒤엎고 희망과 신념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생각이 바뀌면 삶이 바뀌는 법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절망을 희망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무한한 힘’을 갖고 있다. 창조의 능력과 신비롭기까지 한 절대적인 가치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어두울 때 가장 밝은 빛을 만날 수 있는 법이다. 만나기 위해선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논리의 함정을 빠져나와 희망과 친숙해지고 신념을 체질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