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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취약성 이용해 자백 강요, 부녀는 수사 내용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수갑과 포승줄에 결박된 상태로 장시간 조사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13년 만에 재심 통해 무죄판결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명의 성명 ‘취약성 악용한 강압수사는 중대한 인권침해’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편집국장 서일주] 2009년 7월 6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주민 4명이 청산가리가 혼합된 막걸리를 마신 뒤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은 당시 숨진 여성 최 씨의 남편과 딸의 부적절한 관계를 범행 동기로 보고 부녀를 범인으로 지목해 기소했다.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부녀는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 아버지는 무기징역, 딸에게는 징역 20년이 선고되었고, 2012년 3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서 재심 결정 직전까지 15년간 복역했다.
하지만 2014년 1월 4일 광주고등법원을 통해 재심이 진행됐고, 결국 2025년 10월 28일 법원은 당시 검찰이 한글을 거의 읽지 못하거나 경계선 지능 장애가 있는 부녀를 상대로 유도신문 등 강압수사를 했다고 판단해 13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관련해 10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억울한 옥살이의 고통을 견디며 긴 시간 진실을 호소해 온 피해자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는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따르면 사건 당시 아버지는 문맹, 딸은 경계선 장애가 있었음에도 수사기관은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오히려 취약성을 이용해 자백을 강요하였고, 부녀는 수사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수갑과 포승줄에 결박된 상태로 장시간 수사관의 질문을 받아야 했다. 또한 헌법 및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는 변호인 조력권, 불리한 진술거부권, 피의자신문조서 열람권 등을 보장받지 못했다.
인권위는 “수사기관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 형 집행 등은 국가의 공권력 행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로써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기본적 인권이 충실히 보장되어야 한다”며 “특히 장애인, 아동·청소년 등 취약한 지위에 있는 사회적 약자의 경우에는 단순히 법률적 절차를 안내받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이해와 명확한 의사표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보호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재심과 관련해서는 “헌법 제12조는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4조는 자백의 자유와 변호인 조력 등 피의자가 자신을 방어할 충분한 시간과 수단을 부여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며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본권 보장 및 적법절차 원칙 준수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오판으로 야기된 부녀의 기본권 침해 회복을 최우선으로 검찰이 상고 여부를 검토하기를 기대한다”며 “형사절차 전반에 있어 인권 보호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가를 환기하고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사회적 약자 인권보장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도 인권위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더욱 보호될 수 있도록 보다 더 면밀히 법 제도와 관행을 살펴보고 점검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등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 모르는 아버지와 장애인인 딸의 기막힌 사연이 알려지면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도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느냐. 무너진 가정과 파괴된 삶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겠느냐”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