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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달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6인 병실의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엄마는 어젯밤부터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의사의 처방대로 관장약을 드셨지만,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만 해도 화장실을 수없이 드나들었습니다.
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 수족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중증환자입니다. 그런데도 초저녁부터 병실에 딸린 화장실은 마다하고, 복도 끝 공동화장실을 고집했습니다. 기저귀를 채워놓았지만, 엄마는 결코 그곳에 볼일을 보는 일이 없습니다. 링거줄이 주렁주렁 달린 몸을 침대에서 휠체어에 일으키고 앉히는 것도, 요령이 없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얼키설키 꼬인 링거줄들이 엄마의 엉킨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습니다. 엄마는 녹록잖은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스물세 살에 외아들인 아버지께 시집을 와서 홀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뎌내셨습니다. 할머니께서 가당찮은 역정을 낼 때면, 어린 나이에 ‘할머니가 어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라고 못된 생각까지 했습니다. 2남 3녀를 둔 엄마는 자식들 뒷바라지로 자신을 위한 시간은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자식들 출가시키고도 손주들 거두느라 흔히들 다니는, 봄나들이도 제대로 한번 나선 적이 없습니다.
신혼부터 부모님과 함께 사는 오빠 내외는 맞벌이 부부입니다. 대가족 살림살이와 손주들 육아까지 엄마의 몫이 되었습니다. 힘이 들어도 손주들 커가는 재미로 살아오셨지만, 연세가 드실수록 힘에 부쳤을 겁니다. 얼마 전부터 친정에 가면 “이제 끼니때가 되는 게 겁난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덜컥 쓰러지신 것입니다. 나 살아가기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엄마를 외면한 못난 딸이었습니다.
엄마는 당신의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미리 짐작하셨던 겁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말 한마디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아 오신 게 분명합니다. 엄마 연배의 어른들은 누구나 이렇게 살아가신다고들 말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 이런 무책임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어쩌면 부모님 세대의 조건 없는 희생을 자식들은 은연중에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침, 엄마의 병간호 당번으로 막내딸인 제가 정해진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엄마가 예전부터 변비로 고생하신 것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딴에는 변비에 좋은 약이나 식품을 사다 나르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일명 ‘똥약’이라는 알로에 성분의 식품을 사다드렸는데, 아주 효과가 좋았나봅니다. “복희가 날 살렸네.”라며 기뻐하신 적이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제 주변에 배설을 제대로 하지 못해 우여곡절을 겪은 일이 많았습니다.
초보엄마 때 배를 움켜쥐고 울기만 하는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로 달려간 적이 있습니다. 엑스레이 결과상 대장에 동글동글한 똥이 가득 차 있었답니다. 의사의 조치로 관장을 하고 나니까, 아이가 금방 멀쩡해졌습니다. 또, 시아버지께서 간암으로 투병 중에 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 병실에서 난동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시아버지 몸속에 암모니아가 가득 차 눈에 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듯 난폭해졌습니다. 결국은 침대에 양팔 양다리를 꽁꽁 묶어놓은 사태까지 벌어졌던 일이 생생합니다.
인간의 3대 욕구가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고 합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화장실에 몇 번이나 드나들어도 지독한 체증처럼 막힌, 엄마의 항문을 해결하는 게 큰 숙제였습니다. 뾰족한 수가 없어 막막하던 차에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무릎을 ‘탁!’, 묘책을 발견했습니다. 어찌 이런 방법을 깨단하지 못하고 엄마를 힘들게 했단 말일까요. 휠체어에 엄마를 앉히고 무조건 공중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여기 비데기 있는 변기에 앉아 봐요. 엄마!”
허리끈을 풀자 주르르 엄마의 환자복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속에 꽃무늬 팬티가 수줍게 피어 있었습니다. 엄마는 꽃무늬 팬티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놓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실랑이 끝에 고무줄이 늘어진 팬티를 내렸습니다. 거웃이 듬성듬성한 그곳을 엄마는 검버섯이 핀 거무스름한 손으로 공손하게 가렸습니다.
“엄마, 똥꼬 막히면 큰일 나요. 여기 앉아 보세요.”
비데가 달린 변기에 엄마를 어린아이 달래듯 사정사정해서 앉혔습니다. 팔을 둥둥 걷고 엄마 앞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엉거주춤하게 앉은 엄마 항문으로 비데기 물살이 물총을 쏘아댔습니다. 검지를 신의 한 수인 양 치켜세우고 물길이 터준 길을 더듬더듬 따라갔습니다. 느슨하게 열린 엄마의 항문 속에 딱딱한 게 잡혔습니다. 뱉지 못한 속말들이 돌처럼 굳어 항문을 막아버린 걸까요. 검지를 갈고리 모양으로 오므리고 소중한 그곳을 살살 달랬습니다. 딱딱하게 닿는 엄마 몸속의 돌, 그 돌을 손가락 끝으로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해변에 구르는 몽돌처럼 동글동글한 똥이 변기 속으로 굴렀습니다.
“엄마!, 힘 좀 줘보세요. 더, 더, 더…….”
막혔던 돌들을 거둬내자 엄마는 봇물 터지듯 시원하게 근심을 쏟아내셨습니다.
며칠 시름없던 엄마의 얼굴이 먹구름이 걷힌 듯 말갛게 돌아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몸을 휠체어에 앉히고, 가장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병실 복도를 걸었습니다. 복도 창가까지 따라온 하현달이 느릿느릿 이울고 있습니다.
그날 밤, 엄마 병상 밑 보조의자에서 저의 새우잠은 심해로 들지 못했습니다.
⇁⇁⇁이복희 작가(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