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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새벽칼럼] 구미시, 먹고 즐기는 화합 축제도 좋지만...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5.11.03 11:21 수정 2025.11.03 11:24

역사문화 축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끊긴 다리’ 안타깝다
소중한 자산 후삼국통일의 중심지 구미
후삼국통일촌 조성은 역사관광의 바로미터


↑↑ 구미시 지산샛강, 후삼국통일의 중심지다.
[사진 k문화타임즈]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발행인(시인 소설가) 김경홍] 2006년 구미시 민선 4기 남유진 시장이 취임할 당시, 필자는 상대적으로 지가가 저렴한 무을면이나 옥성면 지역에 백여만 평 규모의 새마을촌 조성을 건의한 바 있다.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영화 및 드라마 촬영장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김성조 의원이 정치력을 발휘해 상모동에 새마을테마파크 프로젝트를 유치하자, 그때야 남 시장은 “새마을촌 조성 구상‘이 바람직한 제안이었다고 털어놓았다.

2015년 필자는 또 김관용 도지사를 만나 후삼국 통일의 중심지인 구미의 문화유산을 계승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자, 김 지사는 구미시가 요구할 경우 용역비 등 소요 예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사업 추진을 독려했으나 흐지부지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렇다면 후삼국통일의 현장인 낙동강 일대의 소중한 역사적 자산을 관광자원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는 이유는 뭘까.

지산동 앞들은 발갱이들이라고 불린다. 원래는 발검(拔劍)들이다. 들판에서 칼집의 칼을 뽑았다는 의미다. 고서에 따르면 935년 지금의 선산읍 생곡리 앞 낙동강 연안에 있던 견훤을 무찌른 왕건은 마지막까지 항전하는 견훤의 아들 신검을 쫓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936년 지산동 앞들에서 신검의 목을 쳤다. 따라서 칼집에서 칼을 뽑은 (발검 拔劍) 왕건이 신검을 격퇴한 지산동 앞들(발갱이 들)과 지산샛강은 후삼국 통일을 완성한 소중한 역사의 현장이다.

⇢전투 과정
918년 궁예를 권좌에서 쫓아내고 권력을 쥔 왕건은 927년, 견훤과의 팔공산 동오수 전투 (桐藪 동수전쟁)에서 대패한 후 선산지역으로 후퇴했다. 그로부터 전열을 가다듬은 시기는 8년 후인 935년이었다. 왕건은 일선군 냉산(태조산)에 숭신산성(崇信山城)을 쌓고, 낙산동 일대에 군창( 軍倉)을 일곱 개나 지어 군량을 비축하는 등 장기전을 마무리했다. 낙산동 일대를 칠창리(七倉里)라고 불렀던 이유다.
팔공산에서 퇴각한 후 전열을 가다듬은 왕건은 935년 선산읍 생곡리 앞(지금의 일선교 근처) 속칭 어성정(禦城亭) 즉 태조방천으로 불리는 낙동강 연안에서 견훤과 후삼국 통일을 위한 싸움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결국 935년 선산 전투에서 왕건은 8년 전 분루를 삼켜야 했던 팔공산 동오수 전투의 악몽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다. 선산에서 대승을 거둔 왕건은 이듬해인 936년 여세를 몰아 견훤의 아들 신검과 고아읍 관심리 앞들에서 제1차 결전에 들어갔다. 당시 왕건이 신검을 막기 위해 주둔한 관심(官心) 평야는 어검(禦劒) 평야, 지금은 어갱이들이라고 불리고 있다. 아울러 괴평리 앞뜰에 진을 쳤던 신검의 진지를 왕건이 점령한 후부터 이곳은 점검(占劒)평야 즉 점갱이들이라고 불렸다.
936년 어검들 전투에서 패배한 신검은 지산동 앞들과 사기점(신평2동)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미리 도착해 진을 치고 있던 왕건은 신검을 사로잡고 목을 치면서 후삼국 통일을 완성했다. 그곳이 바로 지산 샛강과 강을 둘러싸고 있는 지산들(발갱이 들)이다.

⇢역사적 자산 계승은 관광산업의 핵심, 새로운 미래 먹거리 산업
역사적 자산을 활용한 관광산업은 대기업 하나를 유치하는 것 이상의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외국의 도시들은 보여주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괴테 생가(生家)의 관광화를 통해 한 도시가 먹고사는 먹거리를 창출하고 있다. 또 문화유산이 전무하다시피 한 미국 뉴욕은 로마나 파리처럼 역사적 유적으로 유명한 도시도 아니고, 스위스처럼 빼어난 자연환경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곳도 아니지만 없는 문화유산을 개발하고 상품화함으로써 연간 4,000만 명의 내국인과 1,00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로 우뚝 섰다.

전국적으로도 역사의 현장에 스토리를 입힌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제주 올레길은 수려한 자연풍광 속을 걷는다는 보행 위주의 단순성에서 벗어나 오름마다 잔존하는 4•3항쟁의 흔적을 스토리텔링화했다. 찾는 이들을 역사 속으로 안내하면서 관심을 배가시키자는 취지다.

삼국통일의 현장인 논산은 또 우리나라 최초의 향토축제인 60년 전통의 백제문화제를 통해 삼국통일의 현장인 황산벌 전투를 재현하면서 관광 가치를 재고하고 있다. 김천시는 사명대사가 머물렀던 자취를 살려 스토리텔링하면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라면축제, 푸드 패스티벌 등 먹고 즐기는 화합 축제도 사람이 몰려드는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여기에다 더해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다리’를 놓아 역사문화축제로 업그레이드할 경우 관광산업 부흥의 토대를 닦을 수 있다는 여론 확산, 깊이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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