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화타임즈가 이 계절에 꼭 드려야 할 말인 듯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삽상한 기운이 손에 책을 부릅니다. 철이 든 후부터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집과 사무실 그리고 만남으로 살아왔던 수십 년의 일상들이 이젠 아득하기만 합니다. 편지함을 통해서, 택배 아저씨를 통해서, 그리고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서점가를, 가까이서나 멀리 관계없이 도서실을 더듬이는 모습에는 언제나 책이라는 한 묶음의 사색 덩어리가 피어있습니다. 플라스틱 도서대출증 들이 책상 위에 가득합니다.
멀리는 국회도서관부터 시립도서관, 도립도서관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찾았던 흔적이지요. 최근에 들면서 종이책들이 점점 더 어려워짐을 느낍니다. 어쩌면 그만큼 현대문학, 인문학의 사조나 지금의 흐름에는 한걸음 미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변명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2025년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Satantango)』는 한 줄을 몇 번이나 곱씹고 다시 읽으면서, 그 이끄는 모습으로 빠지지 않고는 도저히 따라가는 것조차 힘겹습니다. 작가가 묵시문학의 어른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냄새를 책에서 맡아보려 계속 킁킁 대지요.
이은선이 엮고 쓴 『이신의 예술과 한국 信學』에서는 비록 기독교 신학자의 글이면서도 모든 풍상과 어려움을 이겨낸 그리하여 결국 아픔으로 쓰러진 화가이면서 시인, 신학자의 딸인 저자의 마음이나 신앙의 방식, 그 깊이나 넓이를 몇 번이나 되짚어야 뜻이 다가옵니다.
채은미 지은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에서 ‘이른바 교양이 부족’하다는 저자의 말에서처럼 ‘(문학, 미술, 음악, 역사와는 달리) 과학이 교양에 빠진 이유’를 묻고는 그 최근 과학의 가장 기초라 할 수 있는 양자역학을 풀어주는 내용에서 문득문득 나타나는 수식과 수학기호에서 그만 기가 팍 꺾입니다. 역시 인문학을 했다는 이가 건방지게 이학의 세계를 헤엄쳐보리라 생각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나 봅니다.
‘폭력의 시대, 불가능의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부제로 한 W.G. 제랄트의 『기억의 유령』 역시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바로 읽고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제 한 권의 책으로 마음을 다잡을 시간입니다. AI가 내일의 답이라 생각되면 안광섭의 『생각을 맡긴 사람들(호모브레인리스)』과 김대식이 쓴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를 권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철우의 『수치심을 잃은 사회』나, 칼 융이 쓴 『그림자에 민감해지기』를 통해서 우리, 지금의 모습과 자신의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빛 미치광이』(정승원의 장편소설)이나 이미 오래된 책이라 덮어두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청준의 문학저널 『예언자』 역시 이 계절 시린 옆구리를 채워 따스함으로 채워줄 것입니다. 책 이름을 나열하는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입니다만 이 가을에 한권씩 사서, 가까이 두고 책을 쓴 그분들의 얼굴들을 그려봅시다.
『다산의 문장들』(조윤제)에서 거울을 보듯 마음으로 지켜보시길 권합니다.
어떤 글, 어떤 말보다 책을 말하는 분의 붓끝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