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문화

[단독] 민선시장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창랑 장택상 고택 매입 논란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il.net 기자 입력 2025.10.23 11:13 수정 2025.10.23 11:19

박정희 생가-왕산 허위 생가- 창랑 장택상 생가 잇는 관광형 삼각벨트, 적격이었으나

↑↑ 2016년 k모씨가 음식점을 운영하던 창랑 장택상 고택. 당시만 해도 원형이 유지된 상태였다.
[사진 K문화타임즈.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3]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김경홍 기자] 구미시의회 문화환경위원회가 2026년도 주요업무보고계획안 안건을 다룬 지난 21일 문화예술과가 창랑 장택상 고택 매입 계획을 밝히자, 김재우 위원장은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고택은 이미 훼손된 상태다. 너무 늦었다”
하지만 문화예술과장은 “고택으로서 가치가 있다. 창랑의 유물은 영남박물관과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다. 고택에 이를 전시하면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안다”는 취지의 답변을 냈다.
향후 고택 매입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원형 복원과 매입가격 대對 역사적 가치의 재고 등을 둘러싼 의견 대립이 핵심이다.

■원예공사 폐쇄와 창랑 고택 매입 과정, 민선 구미시의 대응은 닮은 꼴
적자 누적으로 문을 닫은 구미원예공사와 창랑 고택 매입을 둘러싼 역대 민선 구미시의 대응은 빼닮은 꼴이다.

구미시 옥성면 낙동강 변에 11만 평 규모로 총 461억 원의 시비를 들여 조성한 구미원예공사는 적자가 지속해서 발생하자 흡수 통합과 구조조정에 나섰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4년 한 해 동안만 전출금이 86억 원에 이를 만큼 적자는 지속됐다. 전체 사업비 461억 원 중 146억 원의 빚을 안고 설립한 원예공사는 매년 9-12억 원에 이르는 원리금 상환과 함께 2005년 당시 원예공사 사장이 검증되지 않은 필리핀산 퇴비를 사용하면서 발생한 선충 여파가 품질 저하와 대일본 수출 타격으로 이어지면서 한 해 동안만도 30억 5천만 원의 적자 손실을 냈다.

원예공사의 적자가 매년 눈두덩이처럼 불어나자, 2014년 7월 연구 용역을 의뢰한 (재)한국경제기획연구원은 더 이상 적자를 누적시키지 않기 위해 매각하거나 조건부 임대방식 등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들여다본 당시 손홍섭·윤종호 전 시의원 등은 “한 지도자(시장)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원예공사의 적자 운영이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한탄했다.

민선 8기 구미시가 추진하려는 창랑 장택상 고택 매입의 건 역시 원예공사의 전철을 되밟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창랑의 아들은 1천만 원도 채 안 되는 헐값으로 처분한 고택은 몇 사람의 손을 거쳐 1987년 남화사가 매입했다. 이어 1995년 사찰 측은 새롭게 지은 절로 이전하기 위해 고택을 10억 원에 내놓았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창랑의 딸 재미 교포 장병호 여사는 고택을 다시 사들이려다 돈이 안 돼 쓰린 가슴을 안고 돌아갔다. 이후 고택은 개인에게 넘겨졌고, 그로부터 다시 고택을 매입한 또 다른 개인은 음식점을 운영하다 2019년 대구시민에게 매매했다.

음식점을 매각하기 전 구미시민으로서 여러 사회단체에 관계하고 있던 음심점업주 k모씨는 민선 6기 당시인 2016년부터 2017년까지 2년간 고택을 매입하도록 구미시에 권유했다. 음식업을 하면서도 역사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겨 원형을 최대한 보존한 그는 여의치 않자, 시장실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매입을 종용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2019년 K씨로부터 14억 5천만 원에 고택을 매입한 대구시민은 현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으로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다. 이후 민선 7기 들어 시가 제3자를 활용해 고택을 매입하려고 했으나 적극성 결여로 무위에 그쳤다. 당시 호가는 25억 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당시 음식점을 운영하던 k모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15억 원 이내의 가격으로 원형이 유지된 고택을 사들일 수 있었다. 결국, 높은 가격에 고택을 매입하고 많은 예산을 들여 원형을 복원해야 하는 부담은 문화예술관광산업을 핵심시책으로 여기는 민선 8기 구미시의 몫이 된 셈이다. 한 지도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따라서 고택 매입을 위한 예산 심의 과정에서는 원형 훼손과 매입가격 대對 역사적 가치의 재고를 둘러싼 집행부와 의회 간 격화된 신경전이 우려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흔적도 남아 있는 90년 역사의 창랑 고택
건축된 지 100년 가까이 된 창랑 장택상 고택(생가)은 김영삼 대통령의 흔적이 살아 있다는 또 다른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1947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한 김 대통령은 당시 정부수립 전국 웅변대회에서 2등을 했다. 웅변 실력을 눈여겨 본 장택상은 김 대통령을 측근으로 삼고, 그 무렵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 운동을 위해 임오동으로 함께 내려왔다.

1997년 4월 21일 자 중앙일보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장택상 비서로 정치에 입문한 김영삼 대통령이 선거 시절에 고택을 자주 드나들었다. 부근에 살고 있는 창랑의 조카며느리 이원규(당시 81세) 할머니는 “김 대통령이 비서로 일할 때는 내가 와이셔츠도 다려주고, 음식도 해 주었다”며 “그 인연으로 지금도 대통령과 스스럼없이 전화를 한다”고 말했다. 한보사건이 터진 이후 “우째 정치를 그리 하노”하고 물었더니 “미안합니더라고만 합디다”라는 게 것이 李씨의 전언이다.

이후 6·25전쟁 당시 학도 의용군으로 복무한 김영삼 대통령은 1951년 장택상 국무총리의 인사담당 비서로 일했고, 1953년 9월 창랑이 국무총리를 사퇴하자, 김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 거제에서 자유당 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25세의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창랑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은 김 대통령은 임오동 고택을 종종 드나들었다고 한다.



↑↑ 2016년 k모씨가 음식점을 운영하던 창랑 장택상 고택. 당시만 해도 원형이 유지된 상태였다.
[사진 K문화타임즈.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3]


■창랑 장택상은 누구인가?
예로부터 인물이 많기로 유명한 구미(선산)에는 현대에 들어서도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물론이요, 김윤환·박세직 전 의원도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창랑 장택상(1893년-1969년) 전 국무총리도 구미가 탄생시킨 출중한 인물에 속한다.
이승만 정권 당시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 총리의 고향이 바로 구미시 오태동이요, 그곳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을 낳은 상모동, 왕산 허위를 낳은 임운동과 이웃해 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생가-왕산 허위 생가- 창랑 장택상 생가를 잇는 관광형 삼각벨트 사업이 꾸준히 거론돼 왔다.

창랑의 부친인 인동 장씨의 장승원(1852년-1917년)은 당시 3대 부자로 구미로 편입되기 이전인 칠곡의 갑부로 유명했다. 그 갑부의 흔적이 지금도 생가의 형태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창랑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웃이면서도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영국 에든버러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해 정구회 회장으로 있다가 광복을 맞자, 수도경찰청장과 제1관구 경찰청장에 취임했다. 이어 1948년 정부수립과 동시에 초대 외무부 장관에 취임했으며, 1950년 고향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그해 민의원 부의장에 선출됐다. 1952년에는 국무총리에 기용됐다. 이후 1958년 제4대에 이어 1960년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됐으나, 5.16으로 국회가 해산되면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창당한 공화당 후보와 6대 선거에서 겨뤘으나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창랑은 공화당과 늘 대립각을 세워온 신민당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정치의 격동기 속에서 신민당 고문을 지내게 된 이유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향이 컸다.

1969년 세상을 떠난 창랑이 다시 세상에 회자된 것은 2006년 KBS가 드라마 <서울 1945>를 방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는 책으로 잘 알려진 창랑의 셋째딸인 장병혜 박사가 “아버지를 여운형 암살사건의 배후인 것처럼 묘사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KBS를 상대로 1억여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던 것.
결국 기각되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을 통해 “사형당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자신의 아버지가 살렸다.”고 말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창랑 고택, 역사가옥 프로젝트로도 적격
전국 지자체는 역사 한옥 프로젝트 추진을 통한 관광산업에 올인하고 있다. 서울시는 역사가옥 프로젝트를, 대구시는 한옥을 활용한 골목투어, 경북은 경북형 한옥 시범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도심지에 흩어져 있는 가옥을 개발해 거점별 관광메카로 삼는다는 계획을 수립한 이후 1930년대 과도기의 한옥 면모를 갖췄으나 방치된 홍건익 가옥, 이태준 고택, 3.1운동을 첫 외신 보도한 미국인 기자 엘버트 테일러가 살았던 딜쿠샤, 배렴가옥 등도 복원해 일반에게 개방했다.

도심의 노후 한옥들의 새로운 변신을 목표로 한옥 지원사업에 나선 대구시는 또 한옥 관광형 골목투어가 인기를 끌자, 고택 복원과 함께 한옥을 신축, 개축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경북도 역시 한옥 시범 건립사업 추진과 함께 문화재 가치가 있고, 건립된 지 70년 이상 된 고택에 대해 예산을 들여 세계적인 숙박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각 지자체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고택 매입에도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1930년대 과도기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관광자원이었으나 방치된 홍건익 고택을 매입, 복원해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으며, 2016년 홍성군은 고택 활용의 극대화를 위해 홍성 엄찬 고택을 매입했다. 또 아산시는 후손의 빚으로 금융권에 저당이 잡혀 경매가 진행 중인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의 건재고택을 매입했다.

대구시와 이상화 기념사업회는 이상화 시인이 말년에 머물던 중구의 단층 목조건물 두 채를 매입해 보수를 거쳐 내부 전시물 설치를 완료하고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또 부여군은 조선시대 4명의 왕비를 배출한 여홍민씨 집안의 조선후기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인 백제관을 매입한 데 이어 보수를 마치고, 한옥 생활 체험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각 지자체는 고택을 매입, 보수한 후 각종 체험공간과 전시관을 조성해 당시의 역사를 후손과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행정력을 올인하고 있다.

한편, 지난 3월 28일 구미문화원은 구미 성리학역사관에서 창랑 장택상 선생 자서전 ‘대한민국 건국과 나’ 재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1992년 9월 창랑 선생이 생전 기술한 1963년 요약 자서전을 토대로 서간문, 사후 추도문과 유족들의 일화를 추가해 김석우 교수가 재출간했다.

기념회에는 김장호 구미시장, 장세용 전 구미시장, 라태훈 구미문화원장, 장세호 인동장씨 대종회장, 이한석 구미문화재단 이사장, 박은호 장원방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등 문화예술 관계자, 인동 장씨 문중, 창랑 선생의 딸 장병호 여사가 유족을 대표해 참석했다.






저작권자 K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