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게 고개를 치켜만 드는 거만한 경우
경청보다 가르치려는 경우
치적 늘어놓기에만 몰두하는 경우
충고를, 욕설로 받아들이는 경우
구미시와 구미시의회 일부 시의원과 일부 간부 공무원 중에도 사례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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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작가 조경래.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17=k문화타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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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발행인 김경홍] 미국이나 선진국의 유명 대학은 구성원을 뽑을 때 실력보다 봉사 점수에 무게를 둔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나라 대학입시에서도 주된 요건이 됐다. 대기업은 물론 심지어 중소기업에도 봉사에 대한 생각이나 실천 과정은 합격과 불합격의 주된 잣대가 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공무원 채용 과정이나 지방의원 등 정치인의 공천 및 선출 과정에서 봉사의 존재 가치는 끼어들 공간이 없다. 이러니, 주민이나 국민들로부터 거만하다는 지적을 자주 듣는다.
봉사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하는 의미를 함축한다.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가치관이 헌법 전문에 흘러넘치는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정신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지방의원이나 공무원 등에게는 강한 겸손지덕의 가치가 강조된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경하는 겸손과 도덕적·윤리적 가치관이나 규범, 행위를 실천해 나가는 덕, 이래서 겸손지덕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살고 있는 구미는 어떤가.
행사장에서는 이런 사례가 자주 목격된다. 상대에게 고개를 치켜만 드는 거만한 경우, 경청보다 가르치려는 경우, 치적 늘어놓기에만 몰두하는 경우, 충고를 욕설로 받아들이는 경우 등이다.
실례로 A모 간부 공무원은 거만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마치 자신이 세상을 호령하듯 하는 오만함이 넘쳐난다. 일부 하급직 공무원들은 그게 옳은 일인 줄 알고 따라 한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경하려고 하기보다, 떠받들기를 바라는 인상이 역력하다. 오만의 극치다.
이를 지켜본 누군가가 충고를 하면 경청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대립을 하려고 든다. 충고의 충忠은 가운데 중 자에다 마음심 자이다. 마음을 모아 잘못을 지적하는 마음을, 자신을 헐뜻는 공격성으로 착각한다. 그러니 인격 부재라는 욕설까지 얻어먹는다.
맹자의 진심 편에는 민위군경民貴君輕이 씌어있다. `백성이 존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고 한 데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백성을 가장 높은 곳에 두고, 임금을 가장 낮은 곳에 두었다. 백성을 다스리려고 하기보다 떠받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일부 지방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은 그렇지가 않다. 경청보다 떠벌리기에 바쁘다. 충고하면 인상을 찌푸리고 아첨하면 표정이 환하게 피어난다. 상대가 고개를 숙이면 고개를 치켜들고 상대가 고개를 들면 억누르려고 한다.
연설할 때도 치적 늘어놓기에 바쁘다. ‘어렵게 해서, 힘들게 해서 죄송하다. 많이 비판하고 지적해 달라’는 ‘자아반성’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행사장에서 일부 정치인이나 간부 공무원은 찾아가서 고개를 숙이려고 하기보다 찾아와서 고개 숙여주기를 바란다.
봉사- 겸손지덕- 민위군경의 부재 현장이다. 국민이나 주민만 안타깝다. 하지만 그들도 문제가 있다. 선거 때가 되면 이성적인 잣대를 중시하는 민중이 아닌 동물처럼 휩쓸려 다니는 군중으로 전락한다. 이러니, 일부 정치인이나 간부 공무원들은 떠받들려고 하기보다 다스리려고만 한다.
일부 공무원과 정치인, 성장 과정에서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봉사의 가치를 배우지 못한 탓이다. 사익을 우선하기 때문에 겸손지덕이 설 자리가 없다. 겸손지덕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업에 충실하는 공직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흐려놓는다.
이러한 인격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성공한 삶을 기대하기 어렵다. 겸손지덕의 삶을 내팽개친다면 훗날 그러한 부류들로부터 ‘행한 만큼 받게 된다’.
‘되로 주고 말로 받게 된다’는 이치다. 세상은 겸손지덕으로 어우러져야 아름답다. 모난돌은 정 맞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