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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기획] 경북 1, 2호 대통령 배출한 구미·안동... 뿌리는 진보성향이었다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il.net 기자 입력 2025.10.13 12:10 수정 2025.10.13 17:33

구미⇢옥성 육홍균(최초), 고아 신준원(최초), 선산 김우동·김동석(최초)
안동⇢권오종, 박해충, 오경의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 김경홍 기자] 아름드리나무에도 뿌리가 있듯 2025년 현재의 정치도 뿌리를 갖고 있다. 그 성향이 진보든 보수든 유유한 그 흐름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정치 성향이든지 간에 사익보다 공익적 가치관으로 민족의 부흥과 국민의 행복을 지향해야 하는 삶은 정치계에 뛰어든 이들에게는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다.
그래서 그 정치적 행위가 그릇된 현상에 저항했느냐 아니면 굴복했느냐는 평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구미와 안동 정치는 어떤 토양에 뿌리를 치고 있었을까.

 

 

↑↑ 1948년 제헌 국회
[사진 국회]

⇢구미
제헌 국회가 세상에 명함을 내민 것은 1945년 해방 3년 후인 1948년이었다. 구미는 1963년 공화당 소속 김봉환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까지 15년 동안 진보성향의 인사들이 구미정치를 주도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옥성면의 최초 정치인인 육홍균, 고아읍의 최초 정치인 신준원, 선산읍의 최초 정치인인 김우동과 김동석이다.

옥성면이 낳은 최초 정치인이면서 구미의 최초 정치인으로 기록되는 육홍균은 주아리가 고향이다. 수원고등학교(현 서울대 농대)와 일본대를 중퇴한 그는 농민운동을 주도하다가 1939년 4월 선산 경찰서에 검거돼 1년 3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의병운동, 독립운동가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1948년 제1대, 1950년 제2대 선거에서 당선된 재선 의원이다.

선산읍 최초 정치인인 김우동은 1대 선거에서 육홍균에게 패했으나 1954년 3대 선거에서는 육홍균을 누르고 당선됐다. 김우동은 선산중·고를 설립한 초대 이사장 출신이었다. 구미소비조합을 결성해 항일운동을 이어간 독립운동가 출신이었으나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이승만 독재정권이 이끄는 자유당에 입당하면서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선산 정치사에 오점을 남겼다. 김덕 전 안기부장의 부친이다.

1959년 4대 선거에서는 세 번째 도전한 선산 출신 김동석이 김우동 의원을 누르고 설욕했다. 개표 결과 김우동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으나 재검표 결과 당락이 뒤바뀌면서 당선됐다.
일본 도쿄 제일외국어학교를 수료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송금과 비밀잡지 근우 간행 등을 통한 항일 운동을 펼쳤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 자유당에 입당했다.
오상학원을 설립한 그는 김윤환‧ 김태환 의원의 부친이다. 훗날 한국 정치사에 조병옥, 김대중과 함께 삼부자 국회의원 3대 가문의 기록은 남긴 주인공이다.

1960년 5대 선거에서는 2대 선거에서 육홍균에게 패한 신준원이 육홍균을 누르고 무소속 간판으로 당선됐다.
고아가 고향이다. 선산보통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했다가 투옥되면서 중퇴했다. 출옥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귀국한 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 정치적 경쟁 관계였던 김우동 의원과 구미소비조합을 결성해 항일 운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5.16으로 국회가 해산되면서 10개월의 임기에 그쳤다.

⇢안동
안동은 1948년부터 1996년 제15대 선거에서 민정당 권정달이 정치계에 명함을 내밀기까지 40여 년간 진보성향의 인사가 안동 정치를 주도하다시피 했다. 대표적인 인사가 박해충과 그의 비서 오경의이다.

근현대 정치사를 돌아보면 안동은 경북지역에서 야성의 정서가 강한 곳이다. 역대 안동 총선의 역사 속에도 야성의 물결은 고비마다 위세를 발휘했다. 진보 성향의 박해충 의원을 4선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도 안동이었고, 박해충 의원의 비서인 오경의 의원을 배출한 곳도 안동이었다.

[박해충 의원]
2005년 생을 마감했다.
1980년 5.17 계엄 직후 안가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정치규제를 당했다. 4년 후 해금됐다.
1987년 김영삼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할 때 따라가지 않았고, 신한민주당에 남아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자 신한민주당을 탈당해 통일민주당에 입당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정계를 은퇴했다. 아홉 번 출마해 네 번 당선될 만큼 안동 정치사의 살아있는 전설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야당에 발을 담그면서도 박정희 대통령과 자주 교감을 나누곤 했다. 지연(경북 안동과 구미)의 힘이 이념보다 강했던 탓일까.

[오경의 의원]
1970년대 신민당 박해충 국회의원의 비서로 활동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1980년부터 1985년까지 KBS에서 씨름 경기를 해설하기도 했다. 세 번 도전 끝에 당선돼 초선의원이 됐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안동시 선거구에 출마해 전국구 국회의원인 민주정의당 권중동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권중동 후보의 돈봉투 발송사고가 호재로 작용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 한국마사회 회장에 임명됐고, 1996년까지 직을 이어갔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씨름연맹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1954년과 1958년 3대와 4대에 걸쳐 자유당 권중순, 유시영을 누른 국민회 권오중, 1960년 제5대부터 8대까지 민주당으로 출마해 당선된 박해충, 1988년 13대 선거에서 통합민주당으로 출마해 당선된 오경의는 안동 진보정치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한편, 1971년 8대 선거에서 민주당 박해충은 김관용 전 경북지사의 장인인 공화당 김대진 후보를 누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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