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발행인(시인 소설가) 김경홍] 추석명절이 내일모레다. 이맘때면 시골에 고향을 둔 장·노년층은 마치 물풀처럼 휘감아오는 어린시절을 한두 번은 돌아볼 것이다.
동구 밖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엔 귀향하는 자식의 그리움을 한 아름 품어 안은 어머니. 쟁기질을 마친 아버지가 뚜벅뚜벅 걸어들어오는 골목길. 장독대를 들러친 감나무엔 노란 감이 주렁주렁 맺혔다.
추석명절을 맞아 귀향한 그 아들은 어머니와 마주 앉아 도란도란 가을밤을 건넜다. 한 칸을 사이 두고 이따금 흘려보내는 아버지의 잔기침 소리까지도 방안으로 흘러들어 포근한 정겨움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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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네이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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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해 어느 시대에나 걸맞는 중국의 가훈을 담은 고서, 안지추의 안씨가훈安氏家訓 첫머리는 이렇게 써 내리고 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는 사회에 나와서도 제멋대로 행동하고 꾸짖거나 조언을 하면 오히려 원한을 품는다. 그래서 부모가 자애롭지 못하면 자식이 불효자가 되기 마련이다”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인정이 많고 깊은 사랑을 함축한 자애,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겠으며,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부모로부터 자애로운 교육을 받고 자란 구미 출신 인사에 생각이 멈춘다. 강명구 국회의원과 권대원 합동참모본부 차장(중장)이다. 이 두 인사는 가정교육, 자애로운 부모 교육이 길러낸 성공한 사례를 말해준다. ‘그 부모의 그 아들’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다.
‘저를 기른 것은 아버지의 밥상머리 가르침’이었다는 강명구 국회의원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점심때마다 안부를 여쭙는 권대원 합동참모본부 차장.
2024년 4·10 선거가 종착역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해 4월 2일. 구미시 선산읍 선산오일장 유세장의 연단에 오른 강명구 후보가 마이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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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명구 국회의원 [사진 의원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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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기른 것은 아버지의 밥상머리 가르침이었습니다. 지금도 제 가슴에는 아버지의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웃어른에게 공경해라. 겸손하고 당당해라. 나보다 남을 위해 살라는 가르침의 강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날 아침 문안을 드리자,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이렇게 소개했다.
“유세를 앞둔 아침에도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남 얘기 마라, 나쁜 얘기 마라. 겸손을 약속해라. 상대를 욕하지 않고, 나쁜 짓 하지 않겠다고, 살아가는 곳곳에서 마음과 마음을 나누겠다고 약속해라”
당시 강 후보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아버지의 가르침을 추억했다. 겸손지덕한 ‘아버지의 가르침’,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라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약속이었다.
새벽 산길,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쌀과 보리 이삭을 길러냈듯 강명구 의원의 유년을 기른 것은 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그런 그가 ‘산촌의 소년이 밥상의 힘을 빌려 /세상 속으로 달려갔듯’ 아버지의 가르침을 버팀목 삼아 ‘아버지의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 세계에 뛰어든 것은 23년 전인 2002년이었다.
당시 그는 제16대 대통령 선거 이회창 후보 캠프 ‘2030 선거대책위원회 부단장’을 맡으며 보수 정당 한나라당에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곳간에 쌀이 들어있어야 밥을 지을 수 있는 법이고, 그래야만 소위 ‘밥심’의 힘을 빌려 세상 속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치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07년, 강 의원은 ‘지식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2009년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행정과 공공정책’을 공부했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강명구 의원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거듭나며 정치세계의 중심으로 뛰어들기 위해 심호흡을 몰아쉬었다. 결국 그는 40대의 나이에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국회의원으로 거듭나는 성공신화를 썼다.
지난 4월의 얘기다. 내겐 아름다운 인연이 있다. 큰형님으로 모시는 권두호 전 구미재향군회장, 형님으로 받드는 채동익 전 구미시설공단 이사장과의 만남이다. 한 달에 두어 번가량 만나 점심을 함께한 지도 일 년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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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대원 합동참모본부 차장 [사진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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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그랬다. 구미시 봉곡동의 모 음식점에 도착한 12시 10분경. 다시 그 전화가 걸려 왔다.
“잘 있냐, 우리 셋이서 점심 먹으러 왔다”
한동안 담소를 나누던 권 회장은 휴대전화를 채 전 이사장에게 넘겼고. 다시 내게 넘겼다.
“잘 지내시죠. 늘 감사드립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 년 반 동안 수십번을 만나 점심상을 마주할 때마다 그 전화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걸려 왔다.
그 주인공이 바로 권두호 전 구미시재향군인회장의 아들인 권대원 장군(중장. 합동참모부 차장)이다. 십여 년 전부터 권 회장과 정기 모임을 하고 있는 채 전 이사장의 전언이다.
“수백 번 가까이 점심을 같이했지만, 그때마다 권 장군은 한 번도 빠짐없이 아버님에게 전화 안부를 여쭙곤 했어”
권두호 전 구미시재향군인회장 부부의 자애로운 가정교육은 결국 구미초교, 구미중, 구미고를 거친 한양대 ROTC 출신의 권대원 장교를 합동참모본부 차장(중장)으로 길러냈다.
“자애로운 부모의 가정 교육은 효자를 길러내고 효자가 자신보다 공익의 길을 가는 법이다. 형이 아우를 친애하지 못하면 아우도 형을 경애하지 않는다. 또 남편의 행실이 바르지 않으면 아내가 따르지 않는다”(안지추의 안씨가훈)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일는지 모르나 인간의 기본은 오늘날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추석명절이 내일모레다. 경로효친을 마치 헌신짝처럼 여기는 잘못된 세파. 하지만 그 세파를 이겨내는 효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보다 남을 위한 공익의 길’을 가고 있다.
강명구 국회의원과 권대원 합동참모본부 차장이 정겨운 이름으로 다가오는 초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