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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날. 닫힌 교문 앞에는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돌아서지 못하는 부모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예전처럼 교문에 엿을 붙이거나 찰떡을 부치는 풍경은 없다. 몸은 교문을 들어서지 못하지만, 마음은 자식이 앉은 책상머리에 가 있다. 묵주를 들고 기도하는 할머니,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고개를 숙인 어머니,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하염없이 교실 쪽을 바라보는 아버지. 나도 착잡한 마음을 둘 곳이 없어 교문 앞을 서성거렸다.
12년 공부의 결산을 하루 앞둔 날까지 아이는 담담해 보였다. 막상 당일은 아침도 거의 먹지 못하고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밤잠을 설친 탓인지 지금까지의 컨디션 중 최악이었다. 남편도 출근을 늦추고 고사장까지 동행했다. 운전하면서 뒷자리에 앉은 딸이 걱정되는지 룸미러를 통해 연신 쳐다봤다.
교문 앞에는 응원 나온 후배들과 많은 사람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아이는 그런 분위기가 싫다면서 울먹였다. 괜히 나까지 코끝이 시큰거렸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너만 이런 기분 아니라며 나무랐다. 제대로 격려도 못하고 수험생들에 떠밀려서 아이를 교문 안으로 들여보냈다. 마치 강보에 싸인 아이를 놓친 듯 가슴이 휑했다.
어제 팔공산 갓바위에 올랐다. 지인의 말을 빌자면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필수 코스로 갓바위에 올라 기도를 하면 영험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석조여래좌상’의 머리에 쓴 갓의 모양이 학사모와 비슷하여 입시철 합격을 기원하는 행렬이 해마다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기운을 보태주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부모로서 이 정도의 정성도 안 보이면 면목도 서지 않고 내 마음이 편치 않아서였다.
해마다 그렇듯이 매서운 입시 추위였다. 살을 에는 바람이 몸을 휘감는데도 등줄기에는 땀이 골을 타고 흘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를 여러 번, 자동차 주행으로 치자면 과속딱지가 여러 장 날아오르지 싶다. 한 번도 쉬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걸음을 재촉했다.
마침내 갓바위에 도착했다. “헉!” 잠시 숨이 멎었다. 해발 850미터의 관봉 봉우리에 4미터 높이의 갓바위. 웅장함에 기가 눌렸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 영험의 현장에는 벌써 간절한 모정들이 엎디어 있었다. 새끼를 품고 홀로 눈보라를 맞는 어미 펭귄들 같았다. 오직 한 가지를 소원하며 몰아의 경지에 든 모습이 거룩해 보였다.
딱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가끔 절을 찾을 때가 있었다. 그래도 불공이나 절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하염없이 불상만 바라봤다. 문득 아이 얼굴이 불상에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처음 할 때는 아홉 배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냐고? 내 아이를 위해서 아닌가?’ 절을 하면서 횟수를 세다가 아이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첫아이. 하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고통 끝에 분만했을 때 그 희열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아까워서 어떻게 시집보내나 걱정부터 하지 않았던가. 나와 같은 출산의 아픔을 이 아이도 겪게 해야 하나. 이 아이가 딸이었기에 나와 같은 여자였기에 앞서서 걱정을 했었다. 실수투성이인 초보 엄마를 둔 아이는 자라면서 많이 헛갈리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다.
너무나 많은 일이 떠올라 절을 한 횟수를 잊어버리기를 몇 번. 108배를 제대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횟수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절을 하는 동안 간절히 아이를 생각했고 지금 마음이 이렇게 편안한걸.
오후 4시 50분. 교문 앞에는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로 인산인해였다. 꽁꽁 얼어붙은 교문은 좀체 열리지 않았다. 한 곳만을 주시하고 있는 부모들, 365일을 하루와 같이 다 아이를 위한 마음이겠지만 오늘 하루만은 더 특별했을 것이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머리에 아이의 얼굴로만 가득 찬 하루였다. 5시가 지났는데 교문 안은 정적이 흘렀다. 주먹이 자꾸만 꽉 쥐어졌다. 입안도 바짝 말랐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두런거리는 소리에 정신 차려보니 교문의 쪽문이 먼저 열렸다. 부모들이 한 줄로 늘어섰다. 다들 자기 아이를 잘도 찾는데 나는 내 아이를 찾지 못했다. 큰문이 열리자 봇물 터지듯 아이들이 밀려나왔다. 활짝 웃는 아이, 엄마 붙들고 우는 아이, 만세라며 소리치는 아이 등등, 그들 중에서도 내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엄마, 어디야? 나 엄마 차 있는 데 있어.”
아이의 목소리가 아주 밝아서 안심했다. 몇 십 년 만에 상봉한 이산가족처럼 끌어안고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아이는 관문을 통과하여 자유를 찾아 날아가는 새 같았다. 아빠와 통화를 하는 목소리는 벌써 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복희 작가(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