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문화

[새벽칼럼] 완장, 그 뻔뻔함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5.04.19 21:27 수정 2025.04.19 21:31

김영민 구미·대구 YMCA 전 사무총장/k문화타임즈 상임고문




윤흥길의 장편소설 『완장』(2024.현대문학)의 출간 40주년 개정판이 화제입니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고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어도, 지금 이 사회의 모습, 특히 권력에 대한 의지와 무모함 그리고 얄팍함을 해학적이지만 날카로운 비판으로 깃발과 같이 우뚝한 책입니다.

대충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호남지방(그래서 인지 전체에 흐르는 전라도의 구수하면서도 익살스런 사투리와 맞춤처럼 꼭 맞는 속담으로 더욱 빛이 납니다) 야산개발 사업에 편승하여 벼락부자가 된 최 사장은 저수지 사용권을 따내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관리를 동네 건달에게 맡기게 되는데, 동네나 집안에서는 골칫거리였지만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종술은 ‘감시’보다는 말보다는 좀 더 권위가 있어 보이는 노란 바탕의 파란 글씨로 ‘감시원’이라고 세 개의 빨간 가로줄로 장식한 완장을 차고 우쭐대며 다녔지요.

그 서 푼어치의 권력으로 낚시질하는 젊은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하고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하면서 완장의 힘을 마음껏 우쭐대며 살았습니다. 완장의 힘에 빠진(도취된) 그는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역시 완장에 집착하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었고, 어머니는 완장에 집착하는 그에게서 그 아버지의 비극을 떠올리며 완장에 미혹될까 하여 걱정합니다. 완장의 힘을 과신한 종술은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막아서며 패악을 부리다 결국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하지만 종술은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수지 주변을 맴돌며 봄 가뭄에 저수지 물을 빼려 하는 수리조합 직원, 경찰과 크게 부딪히게 돼도 결국은 그 아버지와 같은 운명처럼 망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벌써 몇 번째 읽는 책이지만 오늘 바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서 꼭 들어맞춘 듯한 정확한 지적과 내용의 흐름이나 종술의 행동 방향을 보고는 무릎을 칩니다. 주인(국민)이 준 완장으로 주인을 겁박하고 쫓겨난 다음에도 뻔뻔스러움은 독사 대가리처럼 쳐 오르기만 합니다.

헌법재판관 만장일치의 결론으로 파면을 당해 완장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이기고 돌아왔다’느니 하면서 개선장군이 된 양 함부로 씨부리는 꼴이, 아무 권한도 없으면서도 주인의 돈으로 흥청망청 이별주라며 나누는 모습이 종술이와 어찌 이리 닮았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무지, 무식함의 바탕을 둔 뻔뻔함, 공사 구분 못하는 완장치레를 厚顔無恥(후안무치, 두터운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음)나, 面譽不忠(면예불충, 면전에서 남을 칭찬하는-사람-에게는 충정이 없음.), 鐵面皮(철면피), 鐵面皮漢(철면피한, 쇠로 (된) 얼굴, 두꺼운 피부처럼 염치가 없고 뻔뻔스러움, 그런 사람), 破廉恥(파렴치, 염치를 모르고 뻔뻔스러움), 破廉恥漢(파렴치한, 청렴함을 깨트려도 부끄러움을 모름, 모르는 사람), 顔厚(안후, 낯가죽이 두껍다) 그리고 面張牛皮(면장우피, 얼굴에 쇠가죽을 바르듯 뻔뻔스러움)라 부릅니다.

2025년의 봄은 봄이 아닌가요?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산불이, 가뜩이나 잡힌 주름을 더욱 짙어지게 만들고, 미국의 대통령인지 또라이(?)인지 어제의 말이 오늘 다르고, 또 내일은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서 증시가 미친년 널뛰듯 하고, 수출로 먹고아야 할 우리 살림인데 줄줄이 폐업이라는 먹구름으로 앞을 분간조차 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거기에 장단을 맞추려고 합니까? 이제 발악할 힘도 사그라지는 판에 고양이 키우기를 필생의 한인양, 아내 받들기를 ‘콩죽 먹은 놈 따로 있고 똥 싸는 놈 따로 있듯’ 날뛰는 인간입니다. 차고 있던 완장을 벗겨버려도 자국은 남았다는 듯 거들먹거리는 이 계절은 언제 지나갈 것인지요?.






저작권자 K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