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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새벽편지] 가시권 안으로 좁혀 들어온 대통령 탄핵 여부...상처없는 나무가 어디 있으랴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5.03.10 17:36 수정 2025.03.10 17:40


↑↑ 구미시 고아읍 강정숲
[사진 제공 = 작가 조경래]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 발행인(시인 소설가)김경홍]
엊그제가 겨울이더니 어느덧 봄날이다. 새벽 출근길에는 생동감마저 돈다. 그래서 세월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고 했던가.
주말에는 김천 오봉지를 다녀왔다. 아내의 읊조림이 긴 여운을 남긴 봄날 오후였다.
“상처 없는 나무들이 없네요. 그래도 새싹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의연함을 보면... “

상처 없이 자란 나무가 어디 있으며, 상처 없는 삶은 또 어디 있으랴.
이 땅에 낳자마자 우리는 부모로부터 ‘남에게 절대 지지 말라’는 훈계를 받는다. ‘어느 장소에서든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일본의 부모와 ‘남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라’고 가르치는 미국의 부모에 비하면 격세지감마저 든다. 이러니, 이기고 지는 것을 삶의 전부처럼 여기는 우리는 늘 결과에 대한 후유증 때문에 심하게 몸살을 앓는다. 요즘의 탄핵 찬반 집회도 그렇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미국과 일본이 부러운 이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4회에 걸친 국회의원 낙선과 3회에 걸친 대선 낙선을 거치면서 낙선 전문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했고, 대선 본선에서도 낙선한 이력을 지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울과 부산에서 연거푸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구미와 인연을 둔 거목들도 낙선의 강을 피할 수 없었다.
구자근 의원은 시의원 낙선과 당선, 도의원 당선, 국회의원 낙선과 당선이라는 능선을 넘나들어 12만에 재선 구미국회의원 시대를 열었다.
허주 김윤환은 9대 중대선거구제 선거에서 군위의 신현학, 성주의 김창환 후보에게 패한 후 제10대 유정회 1기로 당선된 후 11대 전국구에 이어 13, 14, 15대 선거에서 내리 당선되면서 5선 의원이 됐다. 박재홍 의원은 또 11대부터 13대까지 내리 당선되면서 3선에 성공했지만 14대 선거에서 박세직 전 의원에게 패했다.

하지만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좌절하지 않고 재기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들은 우리의 부모가 ‘남에게 절대 지지 말라’고 가르친 과도한 승부욕의 문화를 슬기와 지혜로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탈무드에는 맹인의 등불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한다.
밤길을 걷는 맹인이 등불을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 마주 오던 사람이 물었다.
“앞을 볼 수 없는데 등불을 왜 들고 다닙니까?”
맹인이 답했다.
“당신이 제게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지요. 이 등불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일화에도 배려의 삶이 상대와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 아름답고 커다란 등을 준비한 그는 집 앞에 선반을 만들고 그 위에 등을 올려놓았다. 등불을 집안에 두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해 온 주민들은 그러나, 밤길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을 보면서 프랭클린의 의도를 깨닫기 시작했다. 결국, 주민들이 집 앞 선반에 등불을 울려놓는 것을 계기로 프랭클린의 고향 필라델피아는 길거리를 가로등으로 환하게 밝힌 미국의 첫 번째 도시가 됐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며, 승자와 패자의 길만이 어디 있으랴.
겨울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봄날을 향해 바삐 걸음을 내딛는 초봄이다. 걸어온 겨울날들이 엊그제만 같다.
큰 일을 만날 때마다 초연해야 한다. 우리들을 길러낸 교육은 승부욕에 얽매이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들여다보면 골속 골속에는 홍익인간의 철학이 깊게 물들어 있다. 대통령 탄핵 여부를 가릴 시간표가 가시권 안에 좁혀들었다. 결과에 순응하는 이성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가야 하고, 우리를 이을 후손에게 행복한 세상을 넘겨줄 수 있지 않겠나. 외침은 공존공생을 위한 갈망이어야 한다. 그 외침이 사익에 매몰돼 있다면 공존공생의 사회와 함께 할 자격 상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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