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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분석] 누가 먼저 정상에 권력의 깃발을 꽂을까 ... 구미 현대정치사의 중심축 육육칠 세대 (66년, 67년생)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il.net 기자 입력 2024.07.19 12:15 수정 2024.07.19 12:19

살아있는 권력 육육칠 세대→구자근 국회의원, 윤종호 경북도의원, 양진오 구미시의회 부의장, 김낙관 귀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강승수 구미시의회 의원, 윤영철·박세진 전 구미시의회 의원
마침표를 찍은 권력 오사오 세대(54년생, 55년생)→손홍섭, 이수태, 전인철, 이규원,윤종석 전 구미시의회 의원
구미정치 1세대를 장식한 개척세대·→ 김우동, 신준원, 김동석, 욕홍균, 김봉환 전 국회의원


[K문화타임즈 =김경홍 기자] 정치 세계에는 영원한 적군도 아군도 없다. 청운은 꿈을 논하거나 끌어주고 밀어주던 학창기의 애틋한 인연도 정치 세계로 들어서면 적이 되기도 하고 아군이 되기도 한다.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서울법대 동료 혹은 선후배 관계인 나경원·원희룡·한동훈 후보의 삼각관계는 정치세계가 얼마나 냉혹한 지를 실상을 통해 들여다보게 한다.

구미에도 그러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
1948년 제헌 국회가 문을 열자, 구미정치 1세대를 연 김우동, 신준원, 김동석, 욕홍균, 김봉환 등 5명은 1대부터 6대 국회의원 선거 기간 당락을 건 시소게임을 벌였다. 이들은 일본 유학을 함께 한 동료였거나 일제 식민지 시절 선산을 중심으로 독립 운동을 펼친 동료들이었다. 하지만 정치 무대로 뛰어들면서 이들은 소위 ‘OK목장’의 혈투를 벌였다.

구미정치 1세대를 장식한 개척세대·→ 김우동, 신준원, 김동석, 욕홍균, 김봉환 전 국회의원
1대 선거에서 육홍균에게 패했으나 3대 선거에서 육홍균을 누르고 당선된 김우동은 4대 선거에서는 김동석에게 패했다.
김동석은 2대 선거에서 육홍균, 3대 선거에서 김우동에게 패했으나 4대 선거에서 당선됐으며, 신준원은 2대 선거에서 육홍균에게 패했으나 5대 선거에서 육홍균을 누르고 당선됐다.
신준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 정치적 경쟁 관계였던 김우동과 구미소비조합을 결성해 항일 운동에 앞장서는 등 민족의식이 강한 인물로 분류된다,
김봉환은 또 5대 선거에서 신준원에게 패했으나 6대 선거에서 설욕한 데 이어 7대와 8대에 내리 당선됐다. 1977년 유정회 1기에 이어 전국구로 당선되면서 5선 의원이 됐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1983년까지 3년간 정치 규제를 당했으며, 규제에서 풀려난 후 변호사 업무에 전념하면서 정치세계와 담을 쌓았다.

→마침표를 찍은 권력 오사오 세대(54년생, 55년생)→손홍섭, 이수태, 전인철, 이규원, 윤종석 전 구미시의회 의원
오사오 세대는 구미초등학교 출신의 손홍섭, 이수태, 전인철, 이규원, 윤종석 전직 지방의원들이 주축이 되면서 최대의 정치 군단으로 평가됐다. 오사오 세대들은 구미 정치권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인철 전 의원은 시의회 의장과 도의원을 지냈고, 윤종석 , 손홍섭 전 의원은 시의회 부의장을 지냈으며, 이수태, 이규원 전 시의원은 시의회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그만큼 이들 세대의 파워는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지 않다. 구미 현대 정치사상 최대의 군단이었지만, 국회의원이나 시장으로 가는 장벽을 뚫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권력 육육칠 세대→구자근 국회의원, 윤종호 경북도의원, 양진오 구미시의회 부의장, 김낙관 구미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강승수 구미시의회 의원, 윤영철·박세진 전 구미시의회 의원
최근 들어 오사오 세대에 이은 구미 현대정치의 최대 군단으로 육육칠 세대가 관심을 끈다.
구미시의회 7대 당시인 2014년에는 구자근 도의원, 강승수•양진오• 박세진•윤영철• 윤종호 구미시의회 의원 등 1명의 도의원과 5명의 시의원이 주축이 됐다. 당시만 해도 구미시의회 의원 20명 중 육육칠 세대는 5명, 25%를 마크하면서 신진 정치 세력으로 위상을 강화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21년 들어서면서 육육칠 세대가 구자근 국회의원, 강승수, 양진오, 윤종호, 김낙관 의원으로 재편됐다. 특히 강승수, 양진오, 윤종호 의원 등이 중진 정치인으로 위상이 강화되면서 향후 구미 정치 중심부로의 진입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구자근 국회의원
구미시 의회 역사상 최연소로 기록된 26세의 젊은 나이로 1995년 실시된 제1대 비산동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당시 선거에서 구 의원은 당선자인 곽용기 전 의원과의 표차가 47표에 불과할 만큼 선전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6년 다 선거구(신평동, 공단동, 비산동, 광평동) 시의원 선거에 재도전한 구 의원은 등원에 성공하면서 10년의 한을 풀어냈다. 그러나 구 의원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2010년 실시된 시의원 선거에서 재선의 길이 열려 있었으나, 선거 막판에 시의원의 길을 버리고 3선거구 (상모사곡, 임오동, 광평동, 신평동, 공단동, 비산동)도의원 선거에 도전, 고군분투 끝에 승리했다.
2014년 재선 도의원으로 입지를 구축한 구 의원은 2016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 경선에 나섰으나 분루를 삼켰다. 그러나 그는 2020년과 2024년 총선에서 내리 당선돼 재선 의원으로 입지를 다졌다.
시의원-도의원에 이어 정치적 정상을 탈환하는 기록을 수립했다.

◇윤종호 구미시의회 의원
리어카 노점상에서 대학교수, 주경야독 끝에 대학원 졸업과 박사학위 취득이라는 경력을 지닌 윤종호 의원 역시 저력을 인정받는다. 2010년 양포동, 산동면, 장천면, 해평면, 도개면 시의원 선거에 친박연합 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그는 한나라당 후보를 압도하면서 2위의 득표력과 함께 등원에 성공했다.

이어 2014년 지방 선거에서는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가축분뇨 처리장 입지 문제 등과 관련한 왜곡된 설이 난무하면서 새누리당 후보는 물론 왜곡된 민심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저력을 과시하면서 당선, 재선의원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어 2018년 선거에서는 바른정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3선 의원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후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2022년 경북도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현재 경북도의회 교육위원회 부의장직을 맡고 있다.

◇양진오 구미시의회 부의장
방통대 구미•칠곡 총동창회 회장 당시 학생과 동문의 염원인 학습관 건립 결실을 도출시키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던 양진오 부의장은 구미시 학교운영위원장 연합회장과 경상북도 학교운영위원장 연합회 회장을 맡으면서 구미 교육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얻는다. 입지 전적의 지방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특히 선산중고와 선산 여중•고 통합의 현안을 풀어낸 일꾼으로 알려진 양 부의장은 무투표 당선이라는 영예를 안고 등원 기록을 수립했다. 2018년 들어서면서 선산지역 정치권의 세대교체의 주인공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았다.
2024년 9대 구미시의회 후반기 부의장에 당선되면서 선산지역 대표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졌다.

◇강승수 구미시의회 의원
걸어온 길은 험산 준령 그 자체였다. 한나라당 공천 신청을 고려했으나 선거 막판에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심한 강 의원은 2010년 고아읍, 선산읍, 무을면, 옥성면 시의원 선거에 뛰어들었고,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면서 등원에 성공했다.
이어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했지만, 6•4 지방 선거를 앞두고 다시 새누리당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화제를 낳았다. 강 의원은 특히 2명의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면서 1위로 당선돼 저력을 인정받았다.
2018년과 2022년 8·9대 시의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4선 의원으로 입지를 굳혔다.

◇김낙관 구미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정치적 역경을 극복하고 2018년 지방선거를 통해 등원에 성공했다. 도덕성협회 경북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사회적 보폭을 넓혔다는 활동상이 평가된다.
9대 후반기 후반기 산업건설위원장에 당선됐다.

◇윤영철 전 구미시의회 의원
윤영철 전 의원이 걸어온 길도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소위 실크로드인 공무원직을 30대 말에 벗어던진 그는 2006년 인동동 시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한나라당 소속 2명의 후보 등 10명이 출전한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도전장을 낸 윤 의원은 3위를 마크하면서 저력을 발휘했다는 주변의 위로에 만족해야 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0년 인동동, 진미동 시의원 선거에서 윤 의원은 1위의 득표력을 과시하면서 4년 전 아픔을 설욕했고, 2014년 선거에서도 당선돼 재선의원으로서 상임위원장에 당선돼 입지를 굳혔지만, 당분간 정치의 길을 접은 상태다.

◇박세진 전 구미시의회 의원
구미지역 최초의 지역언론 출신으로 거론되는 박세진 전 의원은 지난 2006년 선거부터 타천으로 거론돼 왔으나, 2010년 선거에서 출마 의지를 굳혔다. 친박연합으로 출마한 박 의원은 3명의 정수인 선주원남동, 도량동 선거에서 2위의 득표력을 과시하면서 등원에 성공했다.
이후 새누리당에 입당한 박 의원은 심학봉 국회의원이 공직선거법과 관련 재판에 진행 중인 위급한 상황 속에서 구미갑 지구당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의리를 지켰고, 2014년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재선의원으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2018년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분루를 삼켜야 했다.
2024년 총선에서도 국민의힘 공천을 신청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뛰는 육육칠 세대 정치인들
50대 후반의 구미정치 육육칠 세대들은 구미를 이끄는 중심축 역할을 소화해 내고 있다.
이들 육육칠 세대의 특성은 논리적이면서 명쾌하고 결단력이 남다르다는 특성을 보인다. 구미의 미래를 이끌 중심축으로써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육육칠 세대들, 이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주경야독의 길을 가고 있다. 최종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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